영어 통역사가 된 아이 — 이민 2세의 눈물과 자부심
이제 스물여섯이 된 박소희(가명)에게 초등학생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이 있습니다. "우리 집 통역사."
부모님이 영어를 거의 못 하셨기 때문에, 전화 통화, 병원 방문, 학교 면담, 은행 업무 — 모두 소희가 옆에서 영어를 해야 했습니다. 열 살 아이가 엄마의 진료 결과를 의사 선생님께 전달하고, 아빠 대신 자동차 보험사와 전화로 싸웠습니다.
"무서웠어요. 제가 잘못 통역하면 어떡하나. 이 서류에 사인하면 안 되는 거면 어떡하나."
어른이 되어서야 그 시절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깨달았습니다. 하지만 동시에 그 시절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도 압니다. 두 개의 언어, 두 개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능력.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어린 나이에 배운 생존력.
소희는 지금 이민자 지원 비영리 단체에서 일합니다. 새로 온 이민자 가족들을 돕는 일입니다. 예전에 자신과 부모님이 받고 싶었던 도움을 지금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있습니다.
"엄마가 언젠가 그러셨어요. '네가 있어서 우리가 살았다'고. 그 말 듣고 많이 울었어요. 무거웠던 게 다 감사로 바뀐 것 같았어요."이민 2세의 이야기는 부모님의 희생이기도 하고, 아이의 성장이기도 합니다. 시애틀 한인 커뮤니티 곳곳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.
* 이 이야기는 독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입니다.
이 기사는 AI가 자동으로 조사·번역·생성한 콘텐츠입니다. 사실 확인을 거쳤으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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