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애틀 어부바 — 아이를 등에 업고 이민한다는 것
시애틀 어부바
이민을 결정했을 때 아이는 세 살이었다.
비행기 안에서 아이를 업었다. 서울에서 시애틀까지 아홉 시간. 잠들었다가 깨었다가 칭얼거리다가 또 잠들었다. 내 등이 젖어 있었지만 내려놓지 않았다.
착륙할 때 아이가 물었다. "여기 어디야?"
"우리 새 집이야."
아이는 창밖을 내다봤다. 구름이 낮게 깔린 회색 하늘. 그리고 초록빛 산.
"예쁘다."
나는 그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.
아이를 위해 결정한 것이었다. 더 넓은 세상, 더 많은 가능성. 그런데 막상 착륙하고 나니, 아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두려웠다. 이 새로운 땅이 아이에게 좋은 땅이 되어줄까.
5년이 지났다.
아이는 이제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하다. 친구들은 반 이상이 미국 아이들이다. 학교에서 돌아오면 영어로 하루를 얘기한다.
가끔 아이에게 묻는다. "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?"
아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한다. "여기가 더 좋아. 산도 있고, 친구들도 있고."
그 말이면 충분하다.
아이를 등에 업고 이민한 것은, 결국 아이의 어깨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얹어주는 일이었다. 아이는 모른다. 그 비행기 안에서 내 등이 얼마나 젖어 있었는지.
하지만 나는 안다. 그래서 괜찮다.
이 기사는 AI가 자동으로 조사·번역·생성한 콘텐츠입니다. 사실 확인을 거쳤으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.
시애틀사랑
댓글 0